좋은 문장을 만나면 우리는 대개 저장 버튼을 누른다. 그러나 저장한 문장은 좀처럼 다시 열리지 않는다. 한 글자씩 손으로 옮기는 동안에만, 문장은 내 속도로 걸어 들어온다. 줍는 일과 사는 일 사이에, 손으로 옮기는 시간이 놓인다.
글뜸
8월 7일 · 고요한 아침
좋은 문장을 만나면 우리는 대개 저장 버튼을 누른다. 그러나 저장한 문장은 좀처럼 다시 열리지 않는다. 한 글자씩 손으로 옮기는 동안에만, 문장은 내 속도로 걸어 들어온다. 줍는 일과 사는 일 사이에, 손으로 옮기는 시간이 놓인다.
글뜸
마음속 풀리지 않는 모든 것을 향해 견디는 마음을 가지라. 굳게 닫힌 방을 사랑하듯, 낯선 말로 쓰인 책을 사랑하듯, 물음 그 자체를 사랑하려 애쓰라. 지금 당장 답을 구하지는 말라. 살아 보지 않은 답은 아직 주어질 수 없으니. 그러니 지금은 물음을 살라. 먼 어느 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답 속으로 걸어 들어가 있으리라.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글뜸 번역
이 시대는 서두름의 시대다. 모든 것을 빨리 읽고 빨리 지나친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천천히 다가가지 않으면 끝내 열리지 않는다. 한 글자씩 더듬어 읽는 일, 앞뒤를 살피며 손끝을 늦추는 일. 천천히 더듬는 손끝에서, 문장은 조금씩 다른 얼굴을 연다.
니체 《아침놀》, 글뜸 풀이
무엇이든 오래 바라본 것만이, 끝내 내 것이 된다. 스쳐 본 것은 이름만 남고, 오래 머문 것은 결까지 남는다. 한 문장을 눈으로 훑고 지나치면 뜻만 스치지만, 손으로 옮겨 적으면 그 문장이 몸에 밴다. 보는 일과 쓰는 일은 그렇게, 천천히 세계를 안으로 들인다.
릴케, 글뜸 풀이
세상은 빠른 것이 이긴다고 말한다. 그러나 가장 부드러운 것이 가장 단단한 것을 이긴다. 물은 서두르는 법 없이도, 낮은 곳으로 흐르며 결국 바위를 지나간다. 물은 오늘도 서두르지 않는다.
노자 《도덕경》, 글뜸 풀이
그대는 나에게 끝없이 채우라 하지 않고, 자꾸만 비우라 하신다. 이 작은 갈대 피리를 비워 두었기에, 그 안으로 노래가 흘러들었다. 가진 것 없어 부끄럽던 자리가, 오히려 무언가 받아들이는 자리가 되었다. 비어 있음은 모자람이 아니라, 무언가 깃들 여백이다.
타고르 《기탄잘리》, 글뜸 풀이
지나간 일은 이미 내 것이 아니고, 오지 않은 일은 아직 내 것이 아니다. 내게 주어진 것은 지금 이 한 호흡뿐이다. 사람이 잃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지금뿐이니, 가진 적 없는 것을 어찌 잃겠는가. 손에 쥔 것 없어도, 지금은 늘 여기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글뜸 번역
솜씨 좋은 백정은 소를 눈으로만 보지 않는다. 십수 년을 벼려 온 손이, 결을 따라 저절로 움직인다. 힘으로 가르지 않고 틈을 따라 미끄러지니, 칼날이 오래도록 상하지 않는다. 무언가에 오래 마음을 쏟은 손은, 머리보다 먼저 길을 안다.
장자, 글뜸 풀이
사람들은 쓸모 있는 것의 쓸모만 안다. 쓸모없음이 얼마나 큰 쓸모인지는 알지 못한다. 곧게 자란 나무는 일찍 베이고, 굽어 쓸모없어 보이는 나무는 그늘이 되어 오래 산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실은 나를 지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장자, 글뜸 풀이
우리는 삶을 채우느라, 정작 사는 일을 놓친다. 단순하게, 단순하게. 일을 백 가지에서 두어 가지로 줄이라. 셈하는 손가락이 열이면 족하다. 나머지는 셈에 넣지 않아도 된다. 덜어 낸 자리에서야 비로소, 내가 무엇을 원했는지 보이기 시작한다.
소로 《월든》, 글뜸 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