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곰이었을 땐 곰을 사랑했고 내가 연어였을 땐 곰을 미워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고 미워하는 건 그런 까닭이다
글뜸 〈그런 까닭이다〉
6월 23일 · 고요한 아침
내가 곰이었을 땐 곰을 사랑했고 내가 연어였을 땐 곰을 미워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고 미워하는 건 그런 까닭이다
글뜸 〈그런 까닭이다〉
오늘 안에 멀리 떠나버릴 나의 누이여 진눈깨비 내리는 바깥이 이상하게 밝구나
미야자와 겐지 〈영결의 아침〉, 글뜸 번역
1922년 11월 27일, 미야자와 겐지가 폐결핵으로 죽어가는 누이 도시코를 위해 진눈깨비를 받으러 가던 그날 쓴 시. 사라져 가는 자에게 마지막으로 떠 줄 수 있는 것이 한 그릇의 비라는 자리에 시를 두었다.
비극은 국지성 호우처럼 갑자기 찾아와 맹렬한 슬픔을 남기고 사라진다.
전건우 《어두운 물》
호러 소설가 전건우의 《어두운 물》의 한 자리. 비극이 국지성 호우처럼 갑작스럽게 찾아와 맹렬한 슬픔을 남기고 사라진다는 결을, 가장 평범한 자연 비유로 새겼다.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학교에 있을 때도 내내 구를 기다렸다. 만날 시간은 분명 정해져 있고, 그때가 아니면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내 마음은 항상 대기 중이었다. 오 분, 삼십 분, 한 시간이 아니라 하루 종일 기다리는 심정이었다. 심지어 구와 함께 있을 때에도 구를 기다리는 기분이었고, 구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때에도 내가 구를 기다리는 기분이었다.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상대를 끝없이 기다린다는 뜻일까. 구가 죽어버린 지금도 나는 구를 기다리고 있다. 구도 나와 같을까.
최진영 《구의 증명》
2015년 작 《구의 증명》의 결. 밥을 먹는 자리에도 잠을 자는 자리에도 사라진 한 사람을 기다리는 자리에서, 최진영은 살아남은 자의 가장 가까운 슬픔을 적었다.
누나라고 불러보랴 오오 불설워 시새움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김소월 〈접동새〉
1925년 시집 《진달래꽃》 수록. 의붓어미의 시샘에 죽은 누이가 접동새가 되었다는 옛 설화를 시로 옮긴 작품. 김소월은 죽음 뒤에도 남는 한이 어떤 소리로 우는가를 새의 울음으로 새겨 두었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든 그대여 내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수없소이다. 내차례에 못올사랑인줄은 알면서도 나혼자는 꾸준히생각하리다. 자그러면 내내어여쁘소서
이상 〈이런 시〉
1934년 무렵 이상의 시 〈이런 시〉. 그토록 사랑하던 그대를 평생 잊을 수 없다는 다짐을 짧은 산문 호흡에 새기며, 이상 특유의 띄어쓰기 없는 형식으로 한 자리를 만들었다.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김 첨지의 마지막 말이 빈 방을 채웠다.
현진건 〈운수 좋은 날〉
1924년 현진건이 발표한 단편 〈운수 좋은 날〉. 일제 강점기 인력거꾼 김 첨지가 모처럼 큰돈을 번 날 집에 돌아와 마주한 자리는 아내의 시신과 텅 빈 방이었다. 작품의 마지막에 식민지 현실의 가장 깊은 자리가 담겼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 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김소월 〈못 잊어〉
1925년 시집 《진달래꽃》 수록. 김소월은 잊지 못함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대로 한 세상을 살아가라고 권하는 자리에서, 그리움과 살아냄이 어긋나지 않는 길을 보여 주었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정지용 〈고향〉
1932년 《동방평론》에 발표된 시. 정지용은 그리워하던 고향에 돌아와도 그것이 기억 속 고향이 아니라는 자리를 응시했다. 고향은 떠나온 자리가 아니라 머릿속에만 남은 풍경이라는 결의 시다.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김소월 〈먼 후일〉
1925년 시집 《진달래꽃》 수록. 김소월의 초기 대표작으로, 사랑의 시제(時制)를 미래 완료로 옮긴 시. 잊겠다고 말하는 자리에 정작 잊지 못함이 묻혀 있다는 역설의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