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오
이상 〈거울〉
▸배경 이야기
1933년 〈가톨릭청년〉에 발표된 시의 앞 세 연이다. 띄어쓰기를 모두 지운 원문 그대로 옮겨 적으면, 거울 속 세계의 숨 막히는 고요가 손끝에 먼저 닿는다. 셋째 연의 줄표는 원문에 있는 것이다.
9월 27일 · 짙은 밤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오
이상 〈거울〉
1933년 〈가톨릭청년〉에 발표된 시의 앞 세 연이다. 띄어쓰기를 모두 지운 원문 그대로 옮겨 적으면, 거울 속 세계의 숨 막히는 고요가 손끝에 먼저 닿는다. 셋째 연의 줄표는 원문에 있는 것이다.
이 거미줄은 내 것이다. 누구 허락을 받고 올라왔느냐. 내려가라, 내려가라.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멀쩡하던 거미줄이, 간다타가 매달린 자리에서 뚝 소리를 내며 끊어졌습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거미줄》, 글뜸 번역
1918년 발표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 《거미줄》에서, 지옥에 내려온 거미줄이 끊어지는 대목이다. 부처가 내린 자비의 실 한 가닥이, 나눠 쓰지 못하는 마음 앞에서 순식간에 끊어지는 순간을 응시한다.
그때는 없음도 없었고 있음도 없었다. 공기도 없었고 그 너머 하늘도 없었다. 무엇이 무엇을 덮고 있었나, 어디에, 누구의 품에. 깊이를 알 수 없는 물이 있었던가. 가장 높은 하늘에서 이것을 굽어보는 이, 그는 알리라, 아니면 그도 모르리라.
《리그베다》 10권 129편 나사디야 찬가, 글뜸 옮김
기원전 1천년 무렵 후기에 더해진 《리그베다》 10권의 창조 찬가. 세계의 시작을 노래하면서도 마지막 절에서 가장 높은 곳의 신조차 알지 못할지 모른다고 물러선다. 경전이 스스로 모른다고 적은 가장 오래된 자리 가운데 하나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1934년 발표된 김영랑의 대표작으로, 우리 순수 서정시의 정점으로 꼽힌다. 한 송이 모란에 봄의 기다림과 상실을 함께 담아, 기쁨과 설움이 한 몸임을 노래한다.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컸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드리우시고, 들판에는 바람을 풀어놓아 주소서. 마지막 열매들이 무르익도록 명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날을 주시어, 무거운 포도송이에 마지막 단맛을 불어넣어 주소서.
릴케 〈가을날〉, 글뜸 번역
1902년 릴케가 파리 시절 쓴 시로, 《형상 시집》에 실렸다. 여름의 절정이 저무는 순간을 신에게 고하며, 완성과 고독을 동시에 청하는 기도의 형식을 취한다.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너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정지용 〈유리창 1〉
1930년 정지용이 어린 자식을 잃고 쓴 참척의 시.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외롭고 황홀한 심사로, 슬픔을 서늘한 이미지의 아름다움으로 견딘다.
그대 늙어 백발이 되고 잠이 많아져 난롯가에서 꾸벅일 때, 이 책을 꺼내 천천히 읽으며 꿈꾸어 보아요. 오직 한 사람만이 그대 안의 순례하는 영혼을 사랑했고, 변해 가는 그대 얼굴의 슬픔까지 사랑했노라.
예이츠 〈그대 늙었을 때〉, 글뜸 번역
1893년 예이츠가 역시 모드 곤을 생각하며 쓴 시. 젊음이 아니라 늙어 변해가는 얼굴의 슬픔까지 사랑하는 한 사람의 눈길을, 미래 시제로 그린다.
내게 하늘의 수놓은 천이 있다면 금빛 은빛으로 짠 그 천을 당신의 발밑에 펼쳐 드리련만 가난한 나는 가진 것이 꿈뿐이라 그 꿈을 당신 발밑에 깔았으니 사뿐히 밟으소서, 그대 밟는 것은 나의 꿈이니
예이츠 〈하늘의 천〉, 글뜸 번역
1899년 예이츠가 짝사랑하던 모드 곤을 향해 쓴 시. 줄 것이라곤 꿈뿐인 가난한 이가 그 꿈을 상대의 발밑에 펼치며, 조심히 밟아 달라 청한다.
사는 일은 이토록 어려운데, 한 줄 글이 너무 쉽게 씌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어쩐지 부끄러워진다. 쉽게 쓴 문장은 쉽게 흩어지고, 어렵게 눌러쓴 문장만이 오래 남는다. 그러니 천천히, 한 자 한 자 눌러쓰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려 한다.
윤동주 〈쉽게 씌어진 시〉, 글뜸 풀이
안나는 자신이 홀로 죽고 잊히리란 걸 알고 있었다. 살아 있는 동안 누구에게도 소중한 존재가 된 적이 없으니 죽음 또한 누구도 안타깝게 만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은희경 《시간의 감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