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었다.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길은 외줄기,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고,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어 있었다. 허 생원은 이런 밤이 좋았다. 길이 외로워지면 외로워질수록 그는 나귀의 잔등 위에서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길은 끝나지 않을 것 같았고, 끝나지 않아도 좋을 것 같았다. 한 평생 떠도는 일이 어찌 그리 부끄러운 일이라 하랴. 떠도는 길마다 메밀꽃이 피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하였다.
돌아가자, 돌아가자. 전원이 묵으려 하니 어찌 돌아가지 않으리. 이제까지 마음이 몸의 종이 되었으니, 어찌 슬퍼하며 홀로 슬퍼하지 않으리. 지나간 일은 돌이킬 수 없음을 알았으니, 앞일은 따라잡을 수 있음을 알겠다. 길을 잘못 들었으나 멀리 가지 않았으니, 오늘이 옳고 어제가 틀렸음을 알았다. 배는 가볍게 흔들리고, 바람은 옷자락을 흩날린다. 길손에게 묻노니, 앞길이 어디인가.
댈러웨이 부인은 꽃을 직접 사 오겠다고 말했다. 그날 아침 거리는 깨끗했고, 빅벤이 시간을 알렸다. 댈러웨이 부인은 알고 있었다. 한 여자의 일생이란 결국 한 번의 파티를 준비하는 일과 비슷하다는 것을. 누구를 부를 것인지, 무엇을 차릴 것인지, 어느 의자에 앉을 것인지. 그러나 진짜 일은 그것들 사이에 있다. 잠깐 멈춰서 들이쉬는 한 호흡, 누군가의 눈을 마주치는 한 순간. 그 사이가 곧 일생이다.
오늘 어머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양로원에서 전보가 왔다. 모친 사망. 내일 장례식. 정중한 인사.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사람들은 내가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울지 않았다고 나를 비난했다. 나는 다만 정직했다. 슬픔은 슬픔이 닿을 때 슬픔이 된다. 닿기 전에 슬프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다. 정직한 자는 자주 비난받는다. 비난받아도 정직은 정직이다.
강은 흘러간다. 끊임없이 흘러가지만 강은 늘 그 자리다. 흘러가는 것은 물이 아니라 시간이며, 시간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다. 싯다르타는 강가에서 오래 앉아 있었다. 강이 그에게 가르쳐 준 것은 한마디였다. 모든 것은 동시에 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강은 동시에 흐르고 있다. 어린 시절도 지금도 노년도 한 사람 안에 동시에 있다. 그것을 알면 시간이 무겁지 않다.
새는 알에서 빠져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곧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빛과 어둠을 함께 품은 자만이 그 신에게로 갈 수 있다. 한 사람의 일생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길이다. 멀리 떠도는 것 같지만 모든 발걸음은 자기 안쪽을 향해 있다. 안쪽으로 깊이 들어간 자만이 비로소 바깥으로 환해진다.
내 일생은 무엇이 될까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되지 않을까를 고민하는 것으로 거의 다 갔다. 사람들은 무엇이 되기 위해 살지만, 나는 다만 무엇이 되지 않기 위해 살았다. 되지 않기 위한 일이 되기 위한 일보다 훨씬 어렵다. 매일 거울을 보며 거울 속의 나에게 묻는다. 너는 오늘 무엇이 되지 않았느냐. 거울 속의 그가 답한다. 다만 살아 있었을 뿐이다. 그 답이 마음에 든다. 종생기란 결국 그런 답을 모은 책이다.
아무도 그에게 수심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 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 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그래도 나비는 다시 날아오를 것이다. 한 번 절어 본 날개는 두 번째에는 더 멀리 갈 줄 안다. 무서운 줄 모르고 날아오른 첫 날갯짓이 그 나비의 평생을 이끈다.
봉염 어머니는 간도까지 흘러왔다. 남편은 일찍이 죽었고, 아들은 항일 운동을 하다 어디론가 끌려갔다. 딸아이마저 병으로 보내고 나니 봉염 어머니에게 남은 것은 빈손과 굶주림뿐이었다. 그런 봉염 어머니가 살기 위해 마지막으로 손댄 일이 소금을 밀수하는 것이었다. 두만강을 건너 무거운 소금 자루를 등에 지고 또다시 강을 건너오는 일. 한 번 잡히면 끝이지만, 한 번 통과하면 식구 한 달 양식이 나오는 일. 봉염 어머니는 그 일을 했다. 살기 위해서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등에 진 소금이 무거울수록 마음은 가벼워졌다. 빼앗긴 자가 무거운 짐을 지는 것이 아니라, 무거운 짐을 진 자만이 빼앗기지 않는다는 것을, 강을 건너며 봉염 어머니는 알게 되었다.
북쪽 바다에 물고기가 있는데 이름을 곤이라 한다. 곤의 크기는 몇 천 리나 되는지 알지 못한다. 곤이 변하여 새가 되니 그 이름을 붕이라 한다. 붕의 등은 몇 천 리나 되는지 알지 못하고, 붕이 한 번 날아오르면 그 날개가 하늘에 드리운 구름 같다. 붕이 남쪽 바다로 옮겨 가는데, 물을 치며 삼천 리를 솟구치고, 회오리바람을 타고 구만 리를 오른다. 매미와 작은 비둘기가 그것을 보고 웃는다. 우리는 펄쩍 뛰어 느릅나무 가지에 앉으며, 어떨 때는 거기에도 닿지 못하여 도로 떨어지는데, 어찌하여 구만 리를 오르려 한단 말인가. 작은 지혜는 큰 지혜에 미치지 못하고, 짧은 햇수는 긴 햇수에 미치지 못한다. 새벽 버섯은 한 달을 알지 못하고, 매미는 한 해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매미에게는 매미의 즐거움이, 새벽 버섯에게는 새벽 버섯의 길이가 있다. 다만 우리는 우리의 자리를 잘 알지 못할 뿐이다.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그의 후예다. 매일 아침 햇볕이 들지 않는 방에서 눈을 뜨고, 매일 저녁 햇볕이 들지 않는 방으로 들어간다. 아내는 늘 곁방에 있고, 곁방에는 늘 손님이 있다. 나는 손님이 갈 때까지 이불을 머리까지 끌어덮고 누워 있다. 천장의 무늬를 세고, 다 세면 다시 처음부터 센다. 어느 봄날 나는 거리에 나섰다. 햇볕이 너무 환해 눈이 부셨고, 부신 만큼 어지러웠다. 사람들은 모두 무엇인가를 향해 가고 있었으며, 나만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랐다. 미쓰꼬시 옥상에 올라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겨드랑이 밑이 가려웠다. 거기에 한때 날개가 있었던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