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쓸모 있는 것의 쓸모만 안다. 쓸모없음이 얼마나 큰 쓸모인지는 알지 못한다. 곧게 자란 나무는 일찍 베이고, 굽어 쓸모없어 보이는 나무는 그늘이 되어 오래 산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실은 나를 지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장자, 글뜸 풀이
8월 7일 · 맑은 오전
사람들은 쓸모 있는 것의 쓸모만 안다. 쓸모없음이 얼마나 큰 쓸모인지는 알지 못한다. 곧게 자란 나무는 일찍 베이고, 굽어 쓸모없어 보이는 나무는 그늘이 되어 오래 산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실은 나를 지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장자, 글뜸 풀이
세상은 빠른 것이 이긴다고 말한다. 그러나 가장 부드러운 것이 가장 단단한 것을 이긴다. 물은 서두르는 법 없이도, 낮은 곳으로 흐르며 결국 바위를 지나간다. 물은 오늘도 서두르지 않는다.
노자 《도덕경》, 글뜸 풀이
우리는 삶을 채우느라, 정작 사는 일을 놓친다. 단순하게, 단순하게. 일을 백 가지에서 두어 가지로 줄이라. 셈하는 손가락이 열이면 족하다. 나머지는 셈에 넣지 않아도 된다. 덜어 낸 자리에서야 비로소, 내가 무엇을 원했는지 보이기 시작한다.
소로 《월든》, 글뜸 풀이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내 안의 부서지지 않는 무언가를 자유롭게 하는 일이다. 아니, 나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일이다. 아니, 부서지지 않고 그대로 존재하는 일이다. 아니, 그저 존재하는 일이다.
카프카 《취라우 잠언》, 글뜸 번역
솜씨 좋은 백정은 소를 눈으로만 보지 않는다. 십수 년을 벼려 온 손이, 결을 따라 저절로 움직인다. 힘으로 가르지 않고 틈을 따라 미끄러지니, 칼날이 오래도록 상하지 않는다. 무언가에 오래 마음을 쏟은 손은, 머리보다 먼저 길을 안다.
장자, 글뜸 풀이
고요히 살고 싶다. 조용한 거품 속에 나를 가두고 이따금 마음이 내킬 때만 그 투명한 외연 너머를 간 보는 거다. 그러나 즐겁게 살아가고 싶다. 즐겁게 고요하기란 과연 내게도 가능한 일일까?
최형준 《방랑기》
누가 일러 주지 않아도 알게 되는 순간이 있다. 배운 적 없는 길을 몸이 앞서 걷는다. 오래 들여다보면 사물이 스스로 제 이치를 연다. 앎이 늘 밖에서 오지만은 않는다. 스승 없이 트인 앎은 빌린 자국이 없어 온전히 제 것으로 남는다.
無師自通, 글뜸 풀이
마음에 두려움이 없고 머리를 높이 든 곳 앎이 자유로운 곳 좁은 집안의 담벼락으로 세계가 조각나지 않은 곳 말이 진실의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곳 지칠 줄 모르는 노력이 완성을 향해 두 팔을 뻗는 곳 이성의 맑은 흐름이 죽은 관습의 황량한 사막 모래 속으로 길을 잃지 않은 곳 마음이 당신에게 이끌려 끝없이 넓어지는 생각과 행동으로 나아가는 곳 그 자유의 하늘로, 나의 아버지여, 내 조국이 깨어나게 하소서.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기탄잘리 35》, 글뜸 번역
Where the mind is without fear and the head is held high; Where knowledge is free; Where the world has not been broken up into fragments by narrow domestic walls; Where words come out from the depth of truth; Where tireless striving stretches its arms towards perfection; Where the clear stream of reason has not lost its way into the dreary desert sand of dead habit; Where the mind is led forward by thee into ever-widening thought and action Into that heaven of freedom, my Father, let my country awake.
1912년 타고르가 직접 영역한 《기탄잘리》 35번. 두려움 없고 앎이 자유로운 곳을 하나씩 열거하며, 그 자유의 하늘로 조국이 깨어나기를 기원한다.
나는 숲으로 갔다. 삶을 의도해서 살아 보고 싶었기에. 삶의 본질적인 사실들만 마주하고, 삶이 가르치려는 것을 배울 수 있는지 보고 싶었기에. 그리고 죽음에 이르러서야 내가 살지 않았음을 깨닫는 일이 없도록. 나는 삶이 아닌 것을 살고 싶지 않았다. 삶은 그토록 소중하니까. 꼭 그래야 하지 않는 한 체념을 연습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깊이 살며 삶의 골수를 남김없이 빨아내고 싶었다. 삶이 아닌 모든 것을 몰아낼 만큼 굳세게, 스파르타 사람처럼 살아, 넓게 베고 바싹 깎아 삶을 한구석으로 몰아 그 가장 낮은 바닥까지 줄이고 싶었다. 그리하여 삶이 비루한 것이라면 그 비루함의 참모습을 남김없이 얻어 세상에 알리고, 숭고한 것이라면 몸으로 겪어 알아 다음 길에서 참되게 전할 수 있도록.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숲으로 갔다), 글뜸 번역
I went to the woods because I wished to live deliberately, to front only the essential facts of life, and see if I could not learn what it had to teach, and not, when I came to die, discover that I had not lived. I did not wish to live what was not life, living is so dear; nor did I wish to practise resignation, unless it was quite necessary. I wanted to live deep and suck out all the marrow of life, to live so sturdily and Spartan-like as to put to rout all that was not life, to cut a broad swath and shave close, to drive life into a corner, and reduce it to its lowest terms, and, if it proved to be mean, why then to get the whole and genuine meanness of it, and publish its meanness to the world; or if it were sublime, to know it by experience, and be able to give a true account of it in my next excursion.
1854년 소로가 월든 호숫가 2년의 삶을 적은 《월든》. 그는 삶의 골수까지 빨아내고 싶어 숲으로 갔다며, 본질만 마주하는 삶의 이유를 밝힌다.
아이를 품에 안은 한 여인이 말했다. 아이들에 대해 말해 주십시오. 그가 말했다. 당신의 아이들은 당신의 아이가 아닙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그리워하는 생명의 아들이고 딸입니다. 그들은 당신을 통해 왔으나 당신에게서 온 것은 아닙니다. 당신과 함께 있으나 당신의 것은 아닙니다. 당신은 그들에게 사랑을 줄 수 있어도 생각을 줄 수는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생각이 있으니. 당신은 그들의 몸을 재울 수 있어도 영혼을 재울 수는 없습니다. 그들의 영혼은 내일의 집에 살고, 당신은 그곳을 꿈에서조차 찾아갈 수 없으니. 당신은 그들처럼 되려 애쓸 수는 있어도, 그들을 당신처럼 만들려 하지는 마십시오. 생명은 뒤로 가지 않으며 어제에 머무르지 않으니. 당신은 활이고, 그 활에서 아이들은 살아 있는 화살로 날아갑니다. 궁수는 무한의 길 위 과녁을 겨누고, 화살이 빠르고 멀리 가도록 온 힘으로 당신을 당깁니다. 그의 손에서 구부러짐을 기쁨으로 삼으십시오. 그는 날아가는 화살을 사랑하듯, 흔들리지 않는 활도 사랑하니.
칼릴 지브란 《예언자》 〈아이들에 관하여〉, 글뜸 번역
Your children are not your children. They are the sons and daughters of Life's longing for itself. They come through you but not from you, And though they are with you yet they belong not to you. You may give them your love but not your thoughts, For they have their own thoughts. You may house their bodies but not their souls, For their souls dwell in the house of tomorrow, which you cannot visit, not even in your dreams. You may strive to be like them, but seek not to make them like you. For life goes not backward nor tarries with yesterday. You are the bows from which your children as living arrows are sent forth. The archer sees the mark upon the path of the infinite, and He bends you with His might that His arrows may go swift and far. Let your bending in the archer's hand be for gladness; For even as He loves the arrow that flies, so He loves also the bow that is stable.
1923년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중 한 장. 아이를 안은 여인의 물음에 예언자는, 부모는 활이고 아이는 그 활을 떠나는 화살이라 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