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는 인천 부두에서 일했다. 새벽에 나가 밤늦게 돌아왔고, 돌아와서는 또 다음 새벽을 준비했다. 임금이 떼이는 날이 떼이지 않는 날보다 많았다. 선비는 처음에는 화가 났고, 다음에는 슬펐고, 끝내는 무엇도 느낄 수 없게 되었다. 인간이 인간을 부리는 일이 어디까지 가능한가. 부려지는 자가 그 부림을 견디는 일이 어디까지 가능한가. 그것이 인간 문제였다. 선비는 알지 못한 채 그 문제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알지 못한 채로도 매일 부두에 나갔다. 그것이 살아 있는 자의 일이었다.
한 사람을 죽이는 일이 죄인가, 죄가 아닌가. 라스콜리니코프는 그 질문을 안고 도끼를 들었다. 들고 나서야 알았다. 그 질문 자체가 이미 죄였다는 것을. 죄는 행위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그 전의 한 생각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한 생각은 평생을 끌고 간다. 라스콜리니코프는 평생 자기의 그 한 생각과 싸웠다. 마지막에 그가 만난 것은 한 여인의 침묵이었다. 침묵은 가장 깊은 용서다.
노인은 작은 배에 혼자였다. 사흘 밤을 한 마리 큰 물고기와 싸웠다. 사람은 패배하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사람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패배할 수는 없다. 마침내 물고기를 잡아 끌고 항구로 돌아오는 길에 상어 떼가 달려들었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노인은 끝까지 싸웠으나 항구에 닿았을 때 남은 것은 거대한 뼈뿐이었다. 그래도 노인은 패배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진짜 싸움은 늘 자기와의 싸움이고, 자기와의 싸움에서는 누구도 패배하지 않는다.
새는 알에서 빠져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곧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빛과 어둠을 함께 품은 자만이 그 신에게로 갈 수 있다. 한 사람의 일생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길이다. 멀리 떠도는 것 같지만 모든 발걸음은 자기 안쪽을 향해 있다. 안쪽으로 깊이 들어간 자만이 비로소 바깥으로 환해진다.
아무도 그에게 수심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 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 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그래도 나비는 다시 날아오를 것이다. 한 번 절어 본 날개는 두 번째에는 더 멀리 갈 줄 안다. 무서운 줄 모르고 날아오른 첫 날갯짓이 그 나비의 평생을 이끈다.
내가 점순이와 성례를 시켜 달라고 또 졸라 댔더니 장인 영감이 그저 빙긋이 웃기만 한다. 사실은 웃는 것도 아닌 것이 화난 것도 아닌 것이 그 표정이 참 묘하다. 나는 일을 하다 말고 점순이를 흘끔흘끔 본다. 점순이는 저쪽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다가 내가 보면 톡 고개를 돌린다. 그러나 또 보면 또 톡 고개를 돌리니, 나는 그것이 좋아서 자꾸 본다. 키가 안 큰다고 성례를 안 시켜 준다 하시는데, 그 키라는 것이 도무지 자랄 기색이 없다. 작년에도 그랬고 재작년에도 그랬다. 봄이 오면 키가 자랄 줄 알았는데 봄은 봄대로 가고 키는 키대로다. 그래도 점순이는 작년보다 한결 예뻐져서, 나는 그것 하나로 봄을 또 견딘다. 어느 날 점순이가 내 등을 톡 치고는 도망갔다. 그날 밤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삼룡이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삼룡이를 벙어리라 불렀고, 삼룡이도 자기를 벙어리라 여겼다. 주인 댁 새 아씨가 시집을 오던 날, 삼룡이는 처음으로 사람의 얼굴을 길게 들여다보았다. 새 아씨는 슬퍼 보였고, 슬퍼 보이는 만큼 아름다웠다. 삼룡이는 무엇 때문에 새 아씨가 슬픈지를 알지 못했다. 알지 못한 채로 다만 새 아씨가 슬프지 않기를 빌었다. 그러나 새 아씨는 매일 슬펐다. 매일 슬픈 새 아씨를 보며 삼룡이의 마음 한가운데에는 한 번도 알지 못한 무엇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어느 날 밤, 주인이 새 아씨를 때리는 것을 본 삼룡이는 처음으로 자기 안에서 무엇인가가 끓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끓어 오르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삼룡이는 알지 못했다. 알지 못한 채로 다만 그 밤에 주인 댁에 불을 질렀다. 불 속에서 삼룡이는 처음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새 아씨를 안았다.
박 군은 가족을 데리고 간도로 갔다. 그곳에서 일하면 살 수 있다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도에도 살 길은 없었다. 어머니는 굶다 못해 길에서 떨어진 귤껍질을 주워 잡수셨고, 아내는 헛것을 보았다. 박 군은 두부 장수를 하고, 나무 장수를 하고, 그러다 끝내 돈이 떨어졌다. 어느 밤, 어머니가 길에서 무엇인가를 줍는 모습을 본 박 군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것이 귤껍질이었던 것을 알고 박 군은 며칠을 울었다. 그리고 어느 날 박 군은 가족을 두고 떠났다. 가족을 살리기 위해 가족을 두고 떠나는 일. 자기 한 몸이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들어가야 할 길을 향해 빠져나가는 일. 박 군은 그것을 탈출이라 불렀다. 떠나면서 박 군은 자기 어머니의 굽은 등을 한 번 더 돌아보았다. 그뿐이었다.
봉염 어머니는 간도까지 흘러왔다. 남편은 일찍이 죽었고, 아들은 항일 운동을 하다 어디론가 끌려갔다. 딸아이마저 병으로 보내고 나니 봉염 어머니에게 남은 것은 빈손과 굶주림뿐이었다. 그런 봉염 어머니가 살기 위해 마지막으로 손댄 일이 소금을 밀수하는 것이었다. 두만강을 건너 무거운 소금 자루를 등에 지고 또다시 강을 건너오는 일. 한 번 잡히면 끝이지만, 한 번 통과하면 식구 한 달 양식이 나오는 일. 봉염 어머니는 그 일을 했다. 살기 위해서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등에 진 소금이 무거울수록 마음은 가벼워졌다. 빼앗긴 자가 무거운 짐을 지는 것이 아니라, 무거운 짐을 진 자만이 빼앗기지 않는다는 것을, 강을 건너며 봉염 어머니는 알게 되었다.
허숭은 시골로 내려갔다. 동경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변호사 자격까지 얻은 그가, 무엇이 부족해서 자기 마을로 돌아왔는지 사람들은 의아해하였다. 허숭은 답하지 않았다. 다만 동네 한가운데에 야학을 짓고,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글자를 가르쳤다. 정선이 처음에는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도시의 화려한 삶을 두고 어찌 이런 흙바닥에서 살려 하는가. 그러나 흙 속에 발을 묻고 일하는 허숭의 모습을 보며 정선의 마음은 차차 변해 갔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서 그치지 않고 흙과 사람들을 함께 사랑하는 일임을, 정선은 비로소 알게 되었다. 흙은 사람을 길렀고, 사람은 흙으로 돌아갔다. 그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며 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