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것도 가득하고 이것도 가득하다. 가득함에서 가득함이 나온다. 가득함에서 가득함을 덜어내어도 남는 것은 가득함뿐이다.
《이샤 우파니샤드》 평안 만트라, 글뜸 옮김
▸배경 이야기
《이샤 우파니샤드》 첫머리에 놓이는 평안 만트라로, 《브리하다란야카 우파니샤드》 5.1.1에도 같은 구절이 있다. 가득함을 뜻하는 푸르남 한 낱말이 네 줄에 일곱 번 돌아오며, 덜어내는 셈법이 통하지 않는 자리를 소리로 보여준다.
9월 27일 · 짙은 밤
저것도 가득하고 이것도 가득하다. 가득함에서 가득함이 나온다. 가득함에서 가득함을 덜어내어도 남는 것은 가득함뿐이다.
《이샤 우파니샤드》 평안 만트라, 글뜸 옮김
《이샤 우파니샤드》 첫머리에 놓이는 평안 만트라로, 《브리하다란야카 우파니샤드》 5.1.1에도 같은 구절이 있다. 가득함을 뜻하는 푸르남 한 낱말이 네 줄에 일곱 번 돌아오며, 덜어내는 셈법이 통하지 않는 자리를 소리로 보여준다.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모든 존재가 병 없기를. 모든 존재가 좋은 것을 보기를. 그 누구도 괴로움의 몫을 지지 않기를.
평안 만트라(사르베 바반투 수키나흐), 글뜸 옮김
인도 전역에서 기도의 끝에 읊는 평안 만트라로, 출전은 확정되지 않았다. 흔히 우파니샤드로 잘못 알려지지만 원문 그대로는 베다에도 우파니샤드에도 없고, 《가루다 푸라나》에 비슷한 구절이 남아 있다. 누가 지었는지 모르는 채로 가장 널리 읊는 기도다.
낡은 옷을 벗고 새 옷을 입듯, 몸에 깃든 이는 낡은 몸을 벗고 다른 새 몸으로 옮겨 간다.
《바가바드 기타》 2장 22절, 글뜸 옮김
《바가바드 기타》 2장에서 크리슈나는 죽음을 슬퍼하는 아르주나에게 몸과 그 안에 깃든 것을 나누어 보인다. 갈아입는 옷이라는 살림살이의 비유로, 인도 사유는 죽음을 가장 평범한 자리로 끌어내린다.
저 미세한 것, 이 모든 것은 그것을 제 알맹이로 삼는다. 그것이 실재이고, 그것이 자기다. 그것이 너다, 슈베타케투야.
《찬도기야 우파니샤드》 6.8.7, 글뜸 옮김
기원전 7세기에서 6세기 무렵 성립한 《찬도기야 우파니샤드》 6장. 아버지 웃달라카가 열두 해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아들 슈베타케투에게 무화과 씨와 물에 녹은 소금을 보이며 아홉 번 되풀이하는 말이다. 스승이 아니라 아버지의 목소리로 남았다.
차라리 사랑하고 잃는 편이 낫다, 아예 사랑하지 않은 것보다.
앨프리드 테니슨 〈추모시〉, 글뜸 번역
1850년 테니슨이 요절한 벗 아서 핼럼을 추모하며 17년에 걸쳐 쓴 장시 《In Memoriam》의 한 구절. 사랑하고 잃는 편이 사랑하지 않은 것보다 낫다고, 상실을 긍정한다.
내게 하늘의 수놓은 천이 있다면 금빛 은빛으로 짠 그 천을 당신의 발밑에 펼쳐 드리련만 가난한 나는 가진 것이 꿈뿐이라 그 꿈을 당신 발밑에 깔았으니 사뿐히 밟으소서, 그대 밟는 것은 나의 꿈이니
예이츠 〈하늘의 천〉, 글뜸 번역
1899년 예이츠가 짝사랑하던 모드 곤을 향해 쓴 시. 줄 것이라곤 꿈뿐인 가난한 이가 그 꿈을 상대의 발밑에 펼치며, 조심히 밟아 달라 청한다.
나는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그 사랑은 아직 내 마음속에 다 꺼지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당신을 더는 괴롭히지 않기를. 말없이, 희망도 없이 사랑했습니다. 그토록 진실하게, 그토록 다정하게 사랑했으니 부디 다른 이도 그렇게 당신을 사랑하기를.
푸시킨, 글뜸 번역
1829년 러시아 국민시인 푸시킨이 쓴 짧은 연시. 끝난 사랑을 원망 대신 축복으로 매듭지으며, 다른 이도 자신만큼 그 사람을 사랑하기를 빈다.
나를 기억해 주세요, 내가 멀리 떠나거든, 침묵의 나라로 아주 가버리거든. 그러나 나를 기억하며 슬퍼하기보다, 차라리 나를 잊고 웃어 주는 편이 훨씬 나아요.
크리스티나 로세티 〈기억해 주세요〉, 글뜸 번역
1849년 크리스티나 로세티가 열아홉에 쓴 소네트. 죽음으로 헤어진 뒤를 상상하며, 기억하며 슬퍼하기보다 차라리 잊고 웃어 달라 청한다.
당신은 나를 끝이 없게 하셨으니, 그것이 당신의 뜻입니다. 이 연약한 그릇을 비우고 또 비우시어, 언제나 새로운 생명으로 채우십니다.
타고르 《기탄잘리》, 글뜸 번역
1913년 아시아 최초의 노벨문학상을 안긴 타고르의 산문시집 첫 편. 유한한 인간을 끝없이 비우고 채우는 신의 손길을, 연약한 피리에 비유한다.
그대는 나에게 끝없이 채우라 하지 않고, 자꾸만 비우라 하신다. 이 작은 갈대 피리를 비워 두었기에, 그 안으로 노래가 흘러들었다. 가진 것 없어 부끄럽던 자리가, 오히려 무언가 받아들이는 자리가 되었다. 비어 있음은 모자람이 아니라, 무언가 깃들 여백이다.
타고르 《기탄잘리》, 글뜸 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