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놓치고 나서 가장 후회되는 것을 한 가지 꼽으라면 단연코 사랑일 것이다. 분명 사랑이었고, 앞으로도 사랑일 테고, 지금도 사랑인 순간들. 조금만 더 용기를 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게 사랑이라 말하면서도 왜 나는 그 앞에서 망설였는지. 아직도 잊지 못하고 이렇게 그리워할 거면서.
태오 《당신이 정말로 잘됐으면 하는 마음에》
8월 7일 · 맑은 오전
아무래도 놓치고 나서 가장 후회되는 것을 한 가지 꼽으라면 단연코 사랑일 것이다. 분명 사랑이었고, 앞으로도 사랑일 테고, 지금도 사랑인 순간들. 조금만 더 용기를 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게 사랑이라 말하면서도 왜 나는 그 앞에서 망설였는지. 아직도 잊지 못하고 이렇게 그리워할 거면서.
태오 《당신이 정말로 잘됐으면 하는 마음에》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따는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게외다.
윤동주 〈별 헤는 밤〉 (전문)
1941년, 연희전문 졸업을 앞둔 윤동주가 쓴 시. 별 하나에 이름 하나를 붙여 부르며, 식민지 청년의 부끄러움과 그리움이 밤하늘 가득 헤아려진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빈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여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안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정지용 〈향수〉 (전문)
1927년 《조선지광》에 실린 정지용의 대표작. 다섯 폭 풍경마다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가 후렴으로 돌아오며, 고향은 잊히지 않음으로 증명된다.
선녀 마고가 말했다. 그대를 모신 뒤로 동해가 뽕밭으로 변하는 것을 세 번 보았습니다. 바다가 밭이 되고 밭이 다시 바다가 되는 동안에도 마고는 다만 지켜보았다. 오래 산 눈에는 변하지 않는 풍경이 없다. 지금 눈앞의 풍경도 누군가의 눈에는 세 번째 바다다.
상전벽해, 글뜸 풀이
桑田碧海
진 갈홍의 《신선전》 마고 조에 실린 말. 당 유희이가 상전벽해 수유개라 노래해 넉 자로 굳었고, 신선의 눈으로 사람의 시간을 재게 한다.
열반을 앞둔 부처 앞에서 제자들이 울었다. 부처는 말했다. 모인 것은 흩어지고 만난 사람은 헤어진다. 이별은 만남의 끝이 아니라 그 일부다. 사람은 헤어질 줄 알면서도 만난다. 그래서 곁에 있는 동안의 얼굴이 오래 남는다.
회자정리, 글뜸 풀이
會者定離
《불유교경》의 세상은 덧없어 만나면 반드시 헤어진다는 구절을 비롯해 여러 경전에 흐르는 정형구. 생자필멸과 짝을 이루는, 열반을 앞둔 마지막 가르침의 말이다.
귀양 간 소식에게 한 노파가 말을 건넸다. 지난날의 부귀가 한바탕 봄꿈이었지요. 천하를 울리던 문장가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꿈은 달수록 깬 자리가 허전하다. 우리가 오늘 붙드는 것도 언젠가는 봄꿈이라 불린다.
일장춘몽, 글뜸 풀이
一場春夢
당 노연양의 시에 처음 보이고, 송 《후청록》의 일화로 퍼진 말. 소동파에게 지난 부귀를 봄꿈이라 일깨운 그 노파를, 사람들은 춘몽파라 불렀다.
잎 하나가 진다. 그것만으로 한 해가 저무는 줄 안다. 병 속 얼음을 보고 천하가 추워진 줄 안다. 큰 흐름은 소리 없이 오지만, 반드시 작은 것을 먼저 보낸다. 오늘 무심히 지나친 사소한 일이 어쩌면 계절의 첫 잎이다.
일엽지추, 글뜸 풀이
一葉知秋
전한 《회남자》 설산훈의 구절. 잎 한 장과 병 속 얼음으로 가까운 데서 먼 것을 헤아리는 눈을 말했고, 당송을 지나며 넉 자로 여물었다.
내일, 새벽, 들판이 희부옇게 밝아 올 무렵 나는 떠나리라. 알고 있단다, 네가 나를 기다린다는 걸.
빅토르 위고 〈내일, 새벽에〉, 글뜸 번역
Demain, dès l'aube, à l'heure où blanchit la campagne, Je partirai. Vois-tu, je sais que tu m'attends.
1856년 시집 《정관 시집》에 실린 시로, 물에 빠져 세상을 떠난 딸 레오폴딘의 무덤을 찾아가는 아버지의 걸음을 그렸다. 위고는 슬픔을 소리 내지 않고, 새벽길을 나서는 담담한 발걸음으로만 적었다.
밤의 고요 속으로 내게 오세요. 말을 건네는 꿈의 고요 속으로 오세요. 시냇물에 닿은 햇살처럼 맑은 눈으로, 부드러운 얼굴로 오세요. 눈물에 젖어 돌아오세요. 오, 기억이여, 희망이여, 다 지나간 시절의 사랑이여.
크리스티나 로세티 〈메아리〉, 글뜸 번역
Come to me in the silence of the night; Come in the speaking silence of a dream; Come with soft rounded cheeks and eyes as bright As sunlight on a stream; Come back in tears, O memory, hope, love of finished years.
1862년 첫 시집에 실린 로세티의 시 〈메아리〉. 떠난 이를 꿈에서라도 다시 만나려는 그리움을 담아, 시인은 사랑을 붙잡는 대신 고요한 부름의 자리로 옮겨 놓는다.
얼마나 많은 이가 그대의 빛나던 순간을 사랑했던가, 그대의 아름다움을 진심으로 혹은 거짓으로 사랑했던가. 그러나 단 한 사람은 그대 안의 순례하는 영혼을 사랑했고, 변해 가는 그대 얼굴의 슬픔까지 사랑했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그대 늙었을 때〉, 글뜸 번역
How many loved your moments of glad grace, And loved your beauty with love false or true, But one man loved the pilgrim soul in you, And loved the sorrows of your changing face;
1892년에 쓴 예이츠의 사랑 시. 젊은 날의 아름다움을 사랑한 이들과 달리, 시인은 세월에 변해 가는 얼굴과 그 안의 방황하는 영혼까지 사랑하는 단 하나의 사랑을 조용히 구분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