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 그. 나는 그를 진심으로 특별히 사랑하고 있으며 심지어 어쩌면 내 생애에 단 하나의 '타인을 위한 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반해 있다. 그가 내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요구하기만 한다면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분연히 버리고 그와 함께 남도로 떠나는 밤 기차의 창가에 청승맞으나 희망찬 포즈로 앉아서 그를 위해 삶은 달걀 껍질을 벗길 것이다, 얼마든지!
은희경 《새의 선물》
▸배경 이야기
1995년 작, 은희경의 첫 장편 《새의 선물》. 사랑을 선언하는 순간에도 그 말을 저만치 두고 지켜보는 열두 살 화자의 눈이, 자기 감정조차 구경거리로 만드는 거리를 만들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