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감이라는 것은, 슬픔의 강바닥에 가라앉아 희미하게 빛나는 사금의 알갱이 같은 것이 아닐까.
다자이 오사무 《사양》
▸배경 이야기
1947년 작 《사양》에서 다자이가 짚은 행복의 자리. 환한 곳이 아니라 슬픔의 강바닥에 가라앉아야만 보이는 작은 사금처럼, 행복은 깊은 바닥에서 가만히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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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 · 깊은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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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 《사양》
1947년 작 《사양》에서 다자이가 짚은 행복의 자리. 환한 곳이 아니라 슬픔의 강바닥에 가라앉아야만 보이는 작은 사금처럼, 행복은 깊은 바닥에서 가만히 빛난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 〈향수〉
1927년 《조선지광》에 발표된 시. 정지용은 일본 유학 중 떠나온 고향을 한 풍경 한 풍경 호명하며, 잊지 못함이 곧 사랑의 다른 이름이 됨을 짚어 두었다.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라는 후렴구가 시 전체를 묶는다.
그래, 그러면 죽게 되는 거지."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죽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안다. 서른 살에 죽든 예순 살에 죽든 결국에는 다 죽게 된다는 것도 모르지 않는다. 어떤 경우라도 그 후에는 다른 남자와 여자들이 살아가게 될 테고, 수천 년 동안 그런 식일 것이다. 이보다 더 분명한 것은 없다. 지금이 됐든 이십 년 후가 됐든 죽게 될 것은 어차피 나다.
알베르 카뮈 《이방인》
《이방인》에서 뫼르소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리. 카뮈는 모든 사람이 결국 죽는다는 가장 단정한 사실 앞에서, 한 사람의 부조리한 평화를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