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정몽주 〈단심가〉
▸배경 이야기
1392년, 이방원이 〈하여가〉로 회유하려 하자 정몽주가 답한 시조. 백 번 죽어 백골이 진토 된 뒤에도 변하지 않을 한 마음을, 고려 충신은 죽음을 앞두고 가장 단단한 호흡으로 새겨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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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 · 깊은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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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주 〈단심가〉
1392년, 이방원이 〈하여가〉로 회유하려 하자 정몽주가 답한 시조. 백 번 죽어 백골이 진토 된 뒤에도 변하지 않을 한 마음을, 고려 충신은 죽음을 앞두고 가장 단단한 호흡으로 새겨 두었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든 그대여 내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수없소이다. 내차례에 못올사랑인줄은 알면서도 나혼자는 꾸준히생각하리다. 자그러면 내내어여쁘소서
이상 〈이런 시〉
1934년 무렵 이상의 시 〈이런 시〉. 그토록 사랑하던 그대를 평생 잊을 수 없다는 다짐을 짧은 산문 호흡에 새기며, 이상 특유의 띄어쓰기 없는 형식으로 한 자리를 만들었다.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도는 참된 도가 아니다. 이름 붙일 수 있는 이름은 변하지 않는 이름이 아니다. 이름 없음은 천지의 시작이요, 이름 있음은 만물의 어머니이다. 그러므로 늘 비움 속에서 그 오묘함을 보고, 늘 채움 속에서 그 가장자리를 본다. 이 둘은 같은 곳에서 나왔으나 이름이 다를 뿐, 둘 다 신비롭다 일컫는다. 신비로움 중의 신비로움, 모든 오묘함의 문이다.
《도덕경》 1장
기원전 6세기 노자 《도덕경》 첫 장의 명제. 이름 붙일 수 있는 이름은 변하지 않는 이름이 아니라는 결로, 노자는 모든 사상의 시작이 이름의 한계를 인정하는 자리임을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