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유를 지닌 사람은, 그 삶이 어떤 방식이든 거의 견뎌 낸다.
프리드리히 니체 《우상의 황혼》, 글뜸 번역
Hat man sein Warum? des Lebens, so verträgt man sich fast mit jedem Wie?
▸배경 이야기
1888년 《우상의 황혼》 '잠언과 화살'. 니체는 살아야 할 이유가 분명한 사람은 어떤 고된 방식의 삶도 버텨 낸다고 적었다. 훗날 빅토르 프랑클이 자주 인용한 문장의 원형이다.
10월 1일 · 맑은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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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니체 《우상의 황혼》, 글뜸 번역
Hat man sein Warum? des Lebens, so verträgt man sich fast mit jedem Wie?
1888년 《우상의 황혼》 '잠언과 화살'. 니체는 살아야 할 이유가 분명한 사람은 어떤 고된 방식의 삶도 버텨 낸다고 적었다. 훗날 빅토르 프랑클이 자주 인용한 문장의 원형이다.
아침에 셋, 저녁에 넷을 주겠다 하자 원숭이들이 성을 냈다. 아침에 넷, 저녁에 셋을 주겠다 하자 기뻐했다. 도토리는 일곱 그대로다. 달라진 건 셈의 순서뿐인데 기쁨과 노여움이 오갔다. 우리가 오늘 화를 낸 일도, 어쩌면 순서가 바뀌었을 뿐인지 모른다.
조삼모사, 글뜸 풀이
朝三暮四
《장자》 제물론의 저공 이야기. 훗날 얕은 속임수라는 뜻으로 굳었지만, 장자가 응시한 것은 속이는 자가 아니라 이름과 실질이 그대로인데도 흔들리는 마음이었다.
나는 숲으로 갔다. 삶을 의도해서 살아 보고 싶었기에. 삶의 본질적인 사실들만 마주하고, 삶이 가르치려는 것을 배울 수 있는지 보고 싶었기에. 그리고 죽음에 이르러서야 내가 살지 않았음을 깨닫는 일이 없도록. 나는 삶이 아닌 것을 살고 싶지 않았다. 삶은 그토록 소중하니까. 꼭 그래야 하지 않는 한 체념을 연습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깊이 살며 삶의 골수를 남김없이 빨아내고 싶었다. 삶이 아닌 모든 것을 몰아낼 만큼 굳세게, 스파르타 사람처럼 살아, 넓게 베고 바싹 깎아 삶을 한구석으로 몰아 그 가장 낮은 바닥까지 줄이고 싶었다. 그리하여 삶이 비루한 것이라면 그 비루함의 참모습을 남김없이 얻어 세상에 알리고, 숭고한 것이라면 몸으로 겪어 알아 다음 길에서 참되게 전할 수 있도록.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숲으로 갔다), 글뜸 번역
I went to the woods because I wished to live deliberately, to front only the essential facts of life, and see if I could not learn what it had to teach, and not, when I came to die, discover that I had not lived. I did not wish to live what was not life, living is so dear; nor did I wish to practise resignation, unless it was quite necessary. I wanted to live deep and suck out all the marrow of life, to live so sturdily and Spartan-like as to put to rout all that was not life, to cut a broad swath and shave close, to drive life into a corner, and reduce it to its lowest terms, and, if it proved to be mean, why then to get the whole and genuine meanness of it, and publish its meanness to the world; or if it were sublime, to know it by experience, and be able to give a true account of it in my next excursion.
1854년 소로가 월든 호숫가 2년의 삶을 적은 《월든》. 그는 삶의 골수까지 빨아내고 싶어 숲으로 갔다며, 본질만 마주하는 삶의 이유를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