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그대로, 종일 벼루를 마주하고, 마음에 떠오르는 시시한 일들을 두서없이 적어 가다 보면,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미친 듯 빠져든다.
요시다 겐코 《도연초》 서장, 글뜸 번역
▸배경 이야기
14세기 일본 가마쿠라 말기의 승려 요시다 겐코가 쓴 수필집 《도연초》의 첫 단상. 심심함을 잊으려 무심히 적은 문장이 미친 듯한 몰입이 되는 자리를, 그는 모든 글쓰기의 시작으로 짚어 두었다.
5월 19일 · 어스름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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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글귀심심한 그대로, 종일 벼루를 마주하고, 마음에 떠오르는 시시한 일들을 두서없이 적어 가다 보면,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미친 듯 빠져든다.
요시다 겐코 《도연초》 서장, 글뜸 번역
14세기 일본 가마쿠라 말기의 승려 요시다 겐코가 쓴 수필집 《도연초》의 첫 단상. 심심함을 잊으려 무심히 적은 문장이 미친 듯한 몰입이 되는 자리를, 그는 모든 글쓰기의 시작으로 짚어 두었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김소월 〈초혼〉
1925년 시집 《진달래꽃》 수록. 망자의 옷을 들고 그 이름을 세 번 부르는 옛 의식 '초혼(招魂)'에서 제목을 가져온 시. 김소월은 부르는 행위가 닿을 곳 없음을 알면서도 끝내 부르지 않을 수 없는 자리를 응시했다.
과거밖에는 없는 인생도 있다. 잊을 수 없는 시간만을 소중히 간직한 채 살아가는 것이 서글픈 일이라고만은 생각지 않는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뒤쫓는 인생이라고 쓸데없는 인생은 아니다. 다들 미래만을 소리 높여 외치지만, 나는 과거를 그냥 물처럼 흘러 보낼 수 없다. 그래서, 그 날이 그리워, 라는 애절한 멜로디의 일본 팝송을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는 것이다.
츠지 히토나리 《냉정과 열정사이 Blu》
2001년 작 《냉정과 열정사이》 Blu 쪽의 결. 츠지 히토나리는 잊을 수 없는 시간만을 소중히 간직한 채 살아가는 한 사람의 자리를, 정직한 거리로 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