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풀이여 무사들이 꾸던 꿈의 자취
마쓰오 바쇼 〈오쿠노 호소미치〉, 글뜸 번역
▸배경 이야기
1689년 바쇼가 후지와라 가문이 멸망한 옛 전쟁터 히라이즈미에 들러 적은 하이쿠. 영광이 머물던 자리에 여름풀만 무성하다는 사실을, 한순간의 풍경 안에 가만히 담았다.
5월 19일 · 느릿한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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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오 바쇼 〈오쿠노 호소미치〉, 글뜸 번역
1689년 바쇼가 후지와라 가문이 멸망한 옛 전쟁터 히라이즈미에 들러 적은 하이쿠. 영광이 머물던 자리에 여름풀만 무성하다는 사실을, 한순간의 풍경 안에 가만히 담았다.
당신은 나를 끝없는 자로 빚으셨다. 그것이 당신의 즐거움이다. 이 약한 그릇을 당신은 거듭 비우시고, 거듭 새 숨으로 채우신다. 갈대로 만든 이 작은 피리를 골짜기와 언덕 너머로 데리고 다니시며, 그 안에 영원히 새로운 가락을 불어 넣으신다.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기탄잘리》, 글뜸 번역
1910년 벵골어 시집 《기탄잘리》의 첫 시. 1913년 타고르 자신의 영역본으로 노벨문학상을 안겼다. 타고르는 신을 향한 헌사를 빌려, 자기를 비우는 사람만이 거듭 채워진다는 결을 가만히 짚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1934년 발표, 《영랑시집》(1935) 수록. 김영랑은 모란이 피는 짧은 시간을 기다리는 일 자체가 한 해의 의미가 되는 자리를 시 안에 새겼다. 기다림이 곧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된다는 역설의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