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지지 못한 것을 함부로 선망하고 가진 것을 폄하하는데 일생의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천국은 언제나 밖에 있고, 집은 지옥이다.
김서해 《여름은 고작 계절》
10월 7일 · 노을 지는 저녁
길이별 한 편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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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해 《여름은 고작 계절》
정체를 알 수 없는 불길한 덩어리가 내 마음을 줄곧 짓누르고 있었다. 초조라고 할까, 혐오라고 할까――술을 마신 뒤에 숙취가 있듯이, 술을 매일 마시다 보면 숙취에 해당하는 시기가 찾아온다.
가지이 모토지로 《레몬》, 글뜸 번역
えたいの知れない不吉な塊が私の心を始終圧えつけていた。焦躁と言おうか、嫌悪と言おうか――酒を飲んだあとに宿酔があるように、酒を毎日飲んでいると宿酔に相当した時期がやって来る。
1925년 작 《레몬》에서 폐를 앓고 빚이 있는 '나'가 정체 모를 불길한 덩어리를 숙취에 견주는 대목이다. 마루젠의 화집 위에 레몬을 얹는 일이 오기 전, 가지이는 이름 붙일 수 없는 무게를 몸이 아는 말로 먼저 더듬는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1934년 발표, 《영랑시집》(1935) 수록. 김영랑은 모란이 피는 짧은 시간을 기다리는 일 자체가 한 해의 의미가 되는 자리를 시 안에 새겼다. 기다림이 곧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된다는 역설의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