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두 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아늑한 이 항군들 손쉽게야 버릴 거냐
박용철 〈떠나가는 배〉
▸배경 이야기
1930년 박용철이 김영랑과 함께 창간한 《시문학》 창간호에 실린 시. 박용철은 떠나야 하는 자의 망설임을 "나 두 야 간다"는 더듬는 반복으로 옮겨, 차마 못 떠나는 마음이 머무는 자리를 응시한다.
10월 3일 · 맑은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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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철 〈떠나가는 배〉
1930년 박용철이 김영랑과 함께 창간한 《시문학》 창간호에 실린 시. 박용철은 떠나야 하는 자의 망설임을 "나 두 야 간다"는 더듬는 반복으로 옮겨, 차마 못 떠나는 마음이 머무는 자리를 응시한다.
원숭이지기가 도토리를 나눠 주며 말했다. 아침에 셋, 저녁에 넷을 주마. 원숭이들이 모두 성을 냈다. 그러면 아침에 넷, 저녁에 셋을 주마. 원숭이들이 모두 기뻐했다.
장자 《장자》 〈제물론〉, 글뜸 번역
狙公賦芧,曰:朝三而暮四。眾狙皆怒。曰:然則朝四而暮三。眾狙皆悅。
《장자》 내편 〈제물론〉의 우화, 조삼모사의 출전. 셈은 그대로인데 순서만 바뀌었을 뿐인데도 기쁨과 노여움이 갈렸다. 장자는 판단을 가르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 관점임을 보였다.
동틀 녘에 미리 스스로에게 일러두어라. 오늘 나는 참견하는 자, 은혜를 모르는 자, 오만한 자, 교활한 자, 시기하는 자, 어울릴 줄 모르는 자와 마주칠 것이다. 그들이 그러한 까닭은 선과 악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선의 본성이 아름다움이며 악의 본성이 추함임을, 잘못을 저지르는 그 사람마저 나와 한 핏줄임을 안다. 같은 피에서가 아니라 같은 지성과 신적인 몫을 나눈 자로서. 그러니 그들 누구도 나를 해칠 수 없다. 아무도 나를 추함에 빠뜨리지 못하기에. 나는 한 핏줄에게 노여워할 수도, 등을 돌릴 수도 없다. 우리는 서로 돕도록 태어났다. 두 발처럼, 두 손처럼, 두 눈꺼풀처럼, 윗니와 아랫니의 두 줄처럼. 그러니 서로 거스르는 것은 본성에 어긋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2권, 글뜸 번역
Ἕωθεν προλέγειν ἑαυτῷ· συντεύξομαι περιέργῳ, ἀχαρίστῳ, ὑβριστῇ, δολερῷ, βασκάνῳ, ἀκοινωνήτῳ· πάντα ταῦτα συμβέβηκεν ἐκείνοις παρὰ τὴν ἄγνοιαν τῶν ἀγαθῶν καὶ κακῶν. ἐγὼ δὲ τεθεωρηκὼς τὴν φύσιν τοῦ ἀγαθοῦ ὅτι καλόν, καὶ τοῦ κακοῦ ὅτι αἰσχρόν, καὶ τὴν αὐτοῦ τοῦ ἁμαρτάνοντος φύσιν ὅτι μοι συγγενής, οὐχὶ αἵματος ἢ σπέρματος τοῦ αὐτοῦ ἀλλὰ νοῦ καὶ θείας ἀπομοίρας μέτοχος, οὔτε βλαβῆναι ὑπό τινος αὐτῶν δύναμαι· αἰσχρῷ γάρ με οὐδεὶς περιβαλεῖ· οὔτε ὀργίζεσθαι τῷ συγγενεῖ δύναμαι οὔτε ἀπέχθεσθαι αὐτῷ. γεγόναμεν γὰρ πρὸς συνεργίαν ὡς πόδες, ὡς χεῖρες, ὡς βλέφαρα, ὡς οἱ στοῖχοι τῶν ἄνω καὶ τῶν κάτω ὀδόντων. τὸ οὖν ἀντιπράσσειν ἀλλήλοις παρὰ φύσιν.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진중에서 그리스어로 남긴 자기 성찰. 2권 첫머리에서, 사람은 윗니와 아랫니처럼 서로 돕도록 태어났음을 아침마다 되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