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양사언
▸배경 이야기
조선 중기 명필이자 강원도 회양 부사를 지낸 양사언의 시조. 산은 오르는 자의 발걸음 앞에서만 산이 된다는 결을, 가장 흔한 자기 변명을 짚으며 가만히 새겼다.
8월 7일 · 느릿한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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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사언
조선 중기 명필이자 강원도 회양 부사를 지낸 양사언의 시조. 산은 오르는 자의 발걸음 앞에서만 산이 된다는 결을, 가장 흔한 자기 변명을 짚으며 가만히 새겼다.
원숭이지기가 도토리를 나눠 주며 말했다. 아침에 셋, 저녁에 넷을 주마. 원숭이들이 모두 성을 냈다. 그러면 아침에 넷, 저녁에 셋을 주마. 원숭이들이 모두 기뻐했다.
장자 《장자》 〈제물론〉, 글뜸 번역
狙公賦芧,曰:朝三而暮四。眾狙皆怒。曰:然則朝四而暮三。眾狙皆悅。
《장자》 내편 〈제물론〉의 우화, 조삼모사의 출전. 셈은 그대로인데 순서만 바뀌었을 뿐인데도 기쁨과 노여움이 갈렸다. 장자는 판단을 가르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 관점임을 보였다.
엄마가 왜 삶의 끝에서 '피앙세'를 가졌는지, 왜 새로운 삶을 꾸리려고 했는지 이해할 것 같았다. 그곳에서, 생명이 쇠해가는 그 요양원 근처에서도 마찬가지로 저녁은 서글픈 쉼과 같았다. 그렇게도 죽음에 가까운 곳에서 엄마는 자유를 느꼈고, 모든 것을 다시 살아볼 준비를 했던 게 확실하다. 아무도 엄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 모든 것을 다시 살아볼 준비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알베르 카뮈 《이방인》
《이방인》 마지막 부분. 죽음을 앞둔 어머니가 왜 새로운 약혼자를 가졌는지를 뫼르소가 비로소 이해하는 자리에서, 카뮈는 부조리한 삶의 마지막 풀림을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