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으로 가는 길은 어렵지 않다. 누구나 눈을 감은 채로 그리로 간다.
비온, 글뜸 옮김
Εὔκολον ἔφασκε τὴν εἰς ᾅδου ὁδόν· καταμύοντας γοῦν ἀπιέναι.
▸배경 이야기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4권에 전하는 비온의 말. 죽음 앞에서 그는 서늘한 재치로, 누구든 눈을 감으면 이르는 길이라며 죽음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9월 29일 · 맑은 오전
길이별 한 편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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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온, 글뜸 옮김
Εὔκολον ἔφασκε τὴν εἰς ᾅδου ὁδόν· καταμύοντας γοῦν ἀπιέναι.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4권에 전하는 비온의 말. 죽음 앞에서 그는 서늘한 재치로, 누구든 눈을 감으면 이르는 길이라며 죽음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람 저마다 모습이 다른데 나무도 다르게 자란다 나무는 자기 자리에 서서 그늘을 드리우는데 나는 자꾸 다른 그늘을 본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람
글뜸 〈비교〉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만은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한용운 〈님의 침묵〉 (전문)
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의 표제시. 한용운은 떠난 님을 보내지 않았다고 말하며, 이별을 만남의 다른 이름으로, 침묵을 노래로 뒤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