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드라미가 열네댓 가지쯤은 되겠지
마사오카 시키 하이쿠 (1900), 글뜸 번역
▸배경 이야기
1900년, 죽음을 1년 앞두고 마사오카 시키가 정원의 맨드라미를 보며 적은 하이쿠. 정확한 숫자를 세지 않고도 '열네댓 가지쯤'이라 짚는 호흡 안에, 떠나기 직전의 사람이 갖는 어림짐작의 평온이 묻혀 있다.
5월 18일 · 깊은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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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오카 시키 하이쿠 (1900), 글뜸 번역
1900년, 죽음을 1년 앞두고 마사오카 시키가 정원의 맨드라미를 보며 적은 하이쿠. 정확한 숫자를 세지 않고도 '열네댓 가지쯤'이라 짚는 호흡 안에, 떠나기 직전의 사람이 갖는 어림짐작의 평온이 묻혀 있다.
다른 사람을 다스리려는 자는 먼저 자기를 다스려야 한다. 자기를 다스리지 못하는 자가 가진 권력은, 권력이 그를 다스리게 된다. 사람을 움직이는 자리에 앉으려면, 먼저 자기 안에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정약용 《목민심서》, 글뜸 풀이
정약용이 강진 유배 시절 완성한 《목민심서》(1818). 지방관이 가져야 할 자세를 적은 책이지만, 그 안에 흐르는 것은 권력을 가진 자가 먼저 자기 자신을 다스려야 한다는 오래된 윤리다.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1926년 《개벽》 70호에 발표. 이상화는 빼앗긴 땅 위에 그래도 오는 봄을 보며, 빼앗긴 자가 자연 앞에서도 자기 자리를 의심해야 하는 슬픔을 시로 옮겨 적었다. 자연의 순환과 식민의 어긋남이 한 자리에 놓이는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