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 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 간들 어떠리.
황진이 〈청산리 벽계수야〉
▸배경 이야기
16세기 황진이가 종실 벽계수에게 부른 시조. '벽계수'와 '명월'이 사람 이름이자 자연이라는 중의로, 한 번 흘러가면 돌아오지 못하는 시간 앞에 머무름의 권유를 두었다.
10월 4일 · 맑은 오전
길이별 한 편씩
다른 글귀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 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 간들 어떠리.
황진이 〈청산리 벽계수야〉
16세기 황진이가 종실 벽계수에게 부른 시조. '벽계수'와 '명월'이 사람 이름이자 자연이라는 중의로, 한 번 흘러가면 돌아오지 못하는 시간 앞에 머무름의 권유를 두었다.
공자는 근심의 방향을 바꾸었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아보지 못함을 걱정하라. 알아주기를 기다리는 눈은 바깥을 향하고, 알아보려는 눈은 곁을 향한다. 같은 근심인데, 방향이 사람을 바꾼다.
공자 《논어》, 글뜸 풀이
子曰:「不患人之不己知,患不知人也。」
기원전 5세기 공자의 말을 제자들이 모은 《논어》, 그 첫 편 학이를 닫는 마지막 장의 한 줄. 알아주기를 기다리는 눈과 알아보려는 눈 사이에서, 근심의 방향 하나가 사람을 바꾼다.
훌륭해질 수 있을까? 그 무렵부터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모든 것에 만족할 수 없었기에, 늘 공허하게 발버둥 쳤다. 내겐 열 겹 스무 겹의 가면이 착 달라붙어 있어서, 어느 것이 얼마나 슬픈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어떤 쓸쓸한 배출구를 발견했다. 창작이었다. 여기엔 수많은 동류가 있어, 다들 나와 마찬가지로 영문을 알 수 없는 이 떨림을 응시하고 있는 듯 여겨졌다. 작가가 되자, 작가가 되자. 나는 남몰래 소망했다.
다자이 오사무 《만년》
다자이의 첫 단편집 《만년》(1936)에 실린 한 대목. 일평생 자기 안의 결핍을 응시한 작가가 그 결핍에서 가까스로 찾은 출구가 글쓰기였다는, 가만한 고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