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정몽주 〈단심가〉
▸배경 이야기
1392년, 이방원이 〈하여가〉로 회유하려 하자 정몽주가 답한 시조. 백 번 죽어 백골이 진토 된 뒤에도 변하지 않을 한 마음을, 고려 충신은 죽음을 앞두고 가장 단단한 호흡으로 새겨 두었다.
6월 23일 · 깊은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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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주 〈단심가〉
1392년, 이방원이 〈하여가〉로 회유하려 하자 정몽주가 답한 시조. 백 번 죽어 백골이 진토 된 뒤에도 변하지 않을 한 마음을, 고려 충신은 죽음을 앞두고 가장 단단한 호흡으로 새겨 두었다.
이모는 이렇게 대답했다. 무언가를 알기 위해서 대답이나 설명보다 시간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고. 더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데 지금 이해할 수 없다고 묻고 또 물어봤자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모르는 건 죄가 아닌데 기다리지 못하는 건 죄가 되기도 한다고.
최진영 《구의 증명》
《구의 증명》의 한 자리. 무언가를 알기 위해서는 대답이나 설명보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결을, 이모의 입을 빌려 가만히 짚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1934년 발표, 《영랑시집》(1935) 수록. 김영랑은 모란이 피는 짧은 시간을 기다리는 일 자체가 한 해의 의미가 되는 자리를 시 안에 새겼다. 기다림이 곧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된다는 역설의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