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 지혜의 가장 높은 자리다.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글뜸 번역
▸배경 이야기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1869) 결말의 결. 그는 역사와 운명을 살핀 긴 소설의 끝에서, 인간이 가닿을 수 있는 가장 높은 지혜는 자기 무지를 아는 일이라고 적었다.
5월 28일 · 느릿한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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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글뜸 번역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1869) 결말의 결. 그는 역사와 운명을 살핀 긴 소설의 끝에서, 인간이 가닿을 수 있는 가장 높은 지혜는 자기 무지를 아는 일이라고 적었다.
옛적에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다.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였다. 스스로 즐거워서 마음에 흡족하였다. 자신이 장주임을 알지 못했다. 문득 깨어 보니 틀림없이 장주였다. 알지 못하겠다. 장주의 꿈에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의 꿈에 장주가 된 것인지를. 장주와 나비는 분명히 다른 것. 이를 일컬어 만물의 변이라 한다.
《장자》 〈제물론〉
기원전 4세기 장자의 〈제물론〉에 나오는 호접지몽. 꿈에서 나비가 된 자신과 깨어나 자신이 된 나비를 구분하지 못하는 자리에서, 장자는 만물의 경계가 결국 한 자리임을 가만히 그렸다.
그래, 그러면 죽게 되는 거지."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죽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안다. 서른 살에 죽든 예순 살에 죽든 결국에는 다 죽게 된다는 것도 모르지 않는다. 어떤 경우라도 그 후에는 다른 남자와 여자들이 살아가게 될 테고, 수천 년 동안 그런 식일 것이다. 이보다 더 분명한 것은 없다. 지금이 됐든 이십 년 후가 됐든 죽게 될 것은 어차피 나다.
알베르 카뮈 《이방인》
《이방인》에서 뫼르소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리. 카뮈는 모든 사람이 결국 죽는다는 가장 단정한 사실 앞에서, 한 사람의 부조리한 평화를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