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에 봄이 드니 미친 흥이 절로 난다. 탁료계변에 금린어 안주로다. 이 몸이 한가하옴도 역군은이샷다.
맹사성 〈강호사시가〉
▸배경 이야기
세종조 명재상 맹사성이 만년에 지은 〈강호사시가〉의 봄 노래. 강호의 봄을 즐기는 자리도 결국 임금의 은혜라는 결로, 사대부의 충의와 자연의 흥취를 한 수에 담았다.
10월 9일 · 깊은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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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사성 〈강호사시가〉
세종조 명재상 맹사성이 만년에 지은 〈강호사시가〉의 봄 노래. 강호의 봄을 즐기는 자리도 결국 임금의 은혜라는 결로, 사대부의 충의와 자연의 흥취를 한 수에 담았다.
여섯 자짜리 병상, 이것이 내 세계다. 그런데 내게는 이 여섯 자짜리 병상도 너무 넓다. 겨우 손을 뻗어 다다미에 닿을 때는 있지만, 이불 밖으로 발을 뻗어 몸을 편히 펼 수도 없다.
마사오카 시키 《병상육척》, 글뜸 번역
病床六尺、これが我世界である。しかもこの六尺の病床が余には広過ぎるのである。僅かに手を延ばして畳に触れる事はあるが、蒲団の外へまで足を延ばして体をくつろぐ事も出来ない。
1902년 5월부터 신문 《일본》에 연재된 《병상육척》의 한 대목으로, 연재가 끝나고 이틀 뒤 시키는 세상을 떠났다. 병상 넓이로 세계를 재던 눈은 같은 연재 안에서 모르핀을 먹은 뒤 수채로 꽃을 그리는 하루도 적어 두었다.
엄마가 왜 삶의 끝에서 '피앙세'를 가졌는지, 왜 새로운 삶을 꾸리려고 했는지 이해할 것 같았다. 그곳에서, 생명이 쇠해가는 그 요양원 근처에서도 마찬가지로 저녁은 서글픈 쉼과 같았다. 그렇게도 죽음에 가까운 곳에서 엄마는 자유를 느꼈고, 모든 것을 다시 살아볼 준비를 했던 게 확실하다. 아무도 엄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 모든 것을 다시 살아볼 준비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알베르 카뮈 《이방인》
《이방인》 마지막 부분. 죽음을 앞둔 어머니가 왜 새로운 약혼자를 가졌는지를 뫼르소가 비로소 이해하는 자리에서, 카뮈는 부조리한 삶의 마지막 풀림을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