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류산 양단수를 예 듣고 이제 보니 도화 뜬 맑은 물에 산영조차 잠겼어라. 아이야, 무릉이 어디오 나는 옌가 하노라.
조식
▸배경 이야기
조선 중기 남명 조식이 지리산(두류산) 두 줄기 물을 본 자리에서 지은 시조. 도화가 떠오른 맑은 물에 산 그림자까지 잠긴 풍경을 보며, 무릉도원이 따로 없고 이 자리가 곧 무릉이라는 마음을 새겼다.
1분 필사평온자유
필사하기글뜸
5월 20일 · 느릿한 오후
길이별 한 편씩
다른 글귀두류산 양단수를 예 듣고 이제 보니 도화 뜬 맑은 물에 산영조차 잠겼어라. 아이야, 무릉이 어디오 나는 옌가 하노라.
조식
조선 중기 남명 조식이 지리산(두류산) 두 줄기 물을 본 자리에서 지은 시조. 도화가 떠오른 맑은 물에 산 그림자까지 잠긴 풍경을 보며, 무릉도원이 따로 없고 이 자리가 곧 무릉이라는 마음을 새겼다.
실수 없이 앎에 도달하는 건 불가능해요. 경험은 오랜 시간에 걸쳐 퇴적물처럼 쌓이는 거죠. 우리는 누구나 경험을 해봐야 해요. 그러고 나서 그 경험의 결과물을 확인해야 비로소 행동을 바꿔야겠다는 자각이 오죠. 그래야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돼요.
베르나르 베르베르 《죽음》
베르베르 《죽음》의 한 자리. 경험이 오랜 시간 동안 퇴적물처럼 쌓이는 결을 통해, 실수와 시간의 관계를 가만히 짚었다.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도는 참된 도가 아니다. 이름 붙일 수 있는 이름은 변하지 않는 이름이 아니다. 이름 없음은 천지의 시작이요, 이름 있음은 만물의 어머니이다. 그러므로 늘 비움 속에서 그 오묘함을 보고, 늘 채움 속에서 그 가장자리를 본다. 이 둘은 같은 곳에서 나왔으나 이름이 다를 뿐, 둘 다 신비롭다 일컫는다. 신비로움 중의 신비로움, 모든 오묘함의 문이다.
《도덕경》 1장
기원전 6세기 노자 《도덕경》 첫 장의 명제. 이름 붙일 수 있는 이름은 변하지 않는 이름이 아니라는 결로, 노자는 모든 사상의 시작이 이름의 한계를 인정하는 자리임을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