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윤동주 〈서시〉
▸배경 이야기
1941년, 연희전문 졸업을 앞둔 윤동주가 자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서문으로 쓴 시. 식민지 청년의 결백이 어디까지 예민해질 수 있는가를, 잎새의 떨림 하나로 가늠한다.
10월 7일 · 짙은 밤
길이별 한 편씩
다른 글귀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윤동주 〈서시〉
1941년, 연희전문 졸업을 앞둔 윤동주가 자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서문으로 쓴 시. 식민지 청년의 결백이 어디까지 예민해질 수 있는가를, 잎새의 떨림 하나로 가늠한다.
나는 숙명적으로 방랑자다. 나는 고향이 없다. 아버지는 시코쿠 이요 사람으로 포목 행상인이었다. 어머니는 규슈 사쿠라지마의 온천 여관 딸이다. 어머니는 타지 사람과 맺어졌다는 이유로 가고시마에서 쫓겨났다. 아버지와 정착할 곳을 찾은 데가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라는 곳이었다.
하야시 후미코 《방랑기》, 글뜸 번역
私は宿命的に放浪者である。私は古里を持たない。父は四国の伊予の人間で、太物の行商人であった。母は、九州の桜島の温泉宿の娘である。母は他国者と一緒になったと云うので、鹿児島を追放されて父と落ちつき場所を求めたところは、山口県の下関と云う処であった。
1930년 단행본으로 묶인 《방랑기》의 첫 대목으로, 바로 뒤에 '여행이 고향이었다'는 말이 오고 북규슈 소학교를 여러 번 옮겼다는 말도 있다. 후미코는 부모의 고향을 둘 다 적어 놓고도 자기 몫의 고향은 끝내 적지 않았다.
"아니, 나는 당신 말을 믿을 수 없어요. 당신이 다른 삶을 바랐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어요." 그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부자가 되고 싶다거나 수영을 빨리 하고 싶다거나 입이 조금 더 잘생겼으면 하고 바라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는 내 말을 다 듣지도 않은 채 내가 꿈꾸었던 다른 삶이 어떤 것이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삶을 추억해볼 수 있는 삶을 꿈꾸었습니다!"라고 소리쳤다.
알베르 카뮈 《이방인》
《이방인》에서 신부의 강요 앞에 선 뫼르소의 결. 한 사람이 자기 삶을 다른 사람의 신앙으로 채우지 않는 자리를 카뮈가 가만히 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