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가 나와 유유히 헤엄치니, 저것이 물고기의 즐거움이다. 그대는 물고기가 아닌데, 어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아는가.
장자 《장자》 〈추수〉, 글뜸 번역
儵魚出遊從容,是魚樂也。子非魚,安知魚之樂。
▸배경 이야기
《장자》 외편 〈추수〉, 호수 다리 위에서 장자와 혜자가 나눈 문답. 물고기의 즐거움을 어떻게 아느냐는 물음을 두고, 장자는 앎과 함께함의 경계를 유쾌하게 흔든다.
중국 전국
쓸모없음에 가장 큰 쓸모가 있음을 본 사상가
글뜸의 결로 만나는 장자의 글귀 12편
피라미가 나와 유유히 헤엄치니, 저것이 물고기의 즐거움이다. 그대는 물고기가 아닌데, 어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아는가.
장자 《장자》 〈추수〉, 글뜸 번역
儵魚出遊從容,是魚樂也。子非魚,安知魚之樂。
《장자》 외편 〈추수〉, 호수 다리 위에서 장자와 혜자가 나눈 문답. 물고기의 즐거움을 어떻게 아느냐는 물음을 두고, 장자는 앎과 함께함의 경계를 유쾌하게 흔든다.
하늘과 땅이 나와 함께 태어났고, 온갖 것이 나와 더불어 하나다.
장자 《장자》 〈제물론〉, 글뜸 번역
天地與我並生,而萬物與我為一。
《장자》 내편 〈제물론〉의 한 구절. 장자는 나와 세계를 가르는 경계를 지우고, 하늘과 땅과 만물이 나와 한 몸으로 흐른다고 보았다.
원숭이지기가 도토리를 나눠 주며 말했다. 아침에 셋, 저녁에 넷을 주마. 원숭이들이 모두 성을 냈다. 그러면 아침에 넷, 저녁에 셋을 주마. 원숭이들이 모두 기뻐했다.
장자 《장자》 〈제물론〉, 글뜸 번역
狙公賦芧,曰:朝三而暮四。眾狙皆怒。曰:然則朝四而暮三。眾狙皆悅。
《장자》 내편 〈제물론〉의 우화, 조삼모사의 출전. 셈은 그대로인데 순서만 바뀌었을 뿐인데도 기쁨과 노여움이 갈렸다. 장자는 판단을 가르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 관점임을 보였다.
천하에 가을 터럭 끝보다 큰 것이 없고, 커다란 산도 오히려 작다.
장자 《장자》 〈제물론〉, 글뜸 번역
天下莫大於秋豪之末,而大山為小。
《장자》 내편 〈제물론〉의 한 구절. 크고 작음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어떤 잣대를 두느냐에 달렸다며, 장자는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크기의 기준을 흔들었다.
지극한 사람은 자기가 없고, 신묘한 사람은 공이 없고, 성스러운 사람은 이름이 없다.
장자 《장자》 〈소요유〉, 글뜸 번역
至人無己,神人無功,聖人無名。
《장자》 내편 〈소요유〉의 한 구절. 걸림 없이 노니는 자유를 이야기하며, 장자는 자기와 공적과 명예를 내려놓은 자리에서 참된 거닒이 시작된다고 보았다.
내 삶에는 끝이 있으나, 앎에는 끝이 없다. 끝이 있는 것으로 끝이 없는 것을 좇으면 위태로울 뿐이다.
장자 《장자》 〈양생주〉, 글뜸 번역
吾生也有涯,而知也無涯。以有涯隨無涯,殆已。
《장자》 내편 〈양생주〉의 첫머리. 장자는 끝없는 앎을 끝있는 삶으로 좇는 일의 위태로움을 짚으며, 삶을 소진하는 끝없는 좇음에서 물러설 것을 권한다.
뱁새는 깊은 숲에 둥지를 틀어도 가지 하나면 족하고, 두더지는 강물을 마셔도 배 하나 채우면 그만이다.
장자 《장자》 〈소요유〉, 글뜸 번역
鷦鷯巢於深林,不過一枝;偃鼠飲河,不過滿腹。
《장자》 내편 〈소요유〉에서 허유가 천하를 물려주려는 요임금에게 답한 말. 장자는 저마다 자연이 요구하는 만큼이면 넉넉하다며, 넘치게 가지려는 마음을 내려놓게 한다.
샘이 마르면 물고기들이 뭍에 모여, 서로 축축한 입김을 뿜어 주고 서로 거품으로 적셔 준다. 그러나 그것은 강과 호수에서 서로를 잊고 지내느니만 못하다.
장자 《장자》 〈대종사〉, 글뜸 번역
泉涸,魚相與處於陸,相呴以濕,相濡以沫,不如相忘於江湖。
《장자》 내편 〈대종사〉의 한 구절, 상유이말의 출전. 메마른 자리에서 서로를 애써 적셔 주는 정보다, 넓은 물에서 서로를 잊고 자유로이 사는 편이 낫다고 장자는 말한다.
그는 하늘이 낸 결을 따라, 큰 틈으로 칼을 넣고 빈 곳으로 몰아가며, 본래 그러한 대로 따랐다. 두께 없는 칼날을 틈 사이로 넣으니, 칼이 노닐 자리가 언제나 넉넉했다.
장자 《장자》 〈양생주〉, 글뜸 번역
依乎天理,批大郤,導大窾,因其固然。以無厚入有間,恢恢乎其於遊刃必有餘地矣。
《장자》 내편 〈양생주〉의 포정해우 이야기. 소를 잡는 백정의 칼은 결을 거스르지 않아 십구 년을 써도 무디지 않았다. 장자는 억지로 맞서지 않고 결을 따르는 삶을 그렸다.
죽어서 뼈가 귀히 모셔지기를 바라겠는가, 살아서 진흙 속에 꼬리를 끌기를 바라겠는가. 나는 진흙 속에 꼬리를 끌며 살겠다.
장자 《장자》 〈추수〉, 글뜸 번역
寧其死為留骨而貴乎,寧其生而曳尾於塗中乎。吾將曳尾於塗中。
《장자》 외편 〈추수〉의 일화. 초나라 왕이 재상 자리를 권하자, 장자는 제단에 모셔진 죽은 거북보다 진흙 속에 살아 꼬리를 끄는 거북이 되겠다며 벼슬을 물렸다.
쓸모 있다는 말은 오래 쓰인다는 뜻이 아니다. 쓸모 있는 나무는 베어진다. 들판에 남아 있는 나무는 누구도 베러 오지 않은 나무다. 쓸모로 자기를 증명하려 할수록, 우리는 자기를 빨리 닳게 한다.
장자 《장자》, 글뜸 풀이
山木自寇也,膏火自煎也。桂可食,故伐之;漆可用,故割之。人皆知有用之用,而莫知無用之用也。
장자 〈인간세〉편의 결. 산속의 큰 나무가 쓸모없어 보여 도리어 천수를 누렸다는 이야기를 통해, 장자는 쓸모로 자기를 증명하려는 자가 가장 빨리 소진된다는 역설을 응시한다.
옛적에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다.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였다. 스스로 즐거워서 마음에 흡족하였다. 자신이 장주임을 알지 못했다. 문득 깨어 보니 틀림없이 장주였다. 알지 못하겠다. 장주의 꿈에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의 꿈에 장주가 된 것인지를. 장주와 나비는 분명히 다른 것. 이를 일컬어 만물의 변이라 한다.
《장자》 〈제물론〉
昔者莊周夢為胡蝶,栩栩然胡蝶也,自喻適志與!不知周也。俄然覺,則蘧蘧然周也。不知周之夢為胡蝶與,胡蝶之夢為周與?周與胡蝶,則必有分矣。此之謂物化。
기원전 4세기 장자의 〈제물론〉에 나오는 호접지몽. 꿈에서 나비가 된 자신과 깨어나 자신이 된 나비를 구분하지 못하는 자리에서, 장자는 만물의 경계가 결국 한 자리임을 가만히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