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가 물었다, 풀이 무엇이냐고, 두 손 가득 그것을 뜯어 내게 가져오며. 내가 어찌 아이에게 답하랴. 나도 그 아이만큼밖에 알지 못하는데. 그것은 내 기질의 깃발이리라, 희망에 찬 초록빛 천으로 짜인. 아니면 그것은 주님의 손수건이리라, 향기로운 선물, 일부러 떨어뜨린 정표, 어느 모서리엔가 임자의 이름을 지녀, 우리가 보고 알아채고 묻도록. 누구의 것이냐고. 아니면 풀은 그 자체로 한 아이, 초목이 낳은 갓난아이이리라. 아니면 그것은 한결같은 상형문자, 넓은 땅에서도 좁은 땅에서도 똑같이 돋아나 검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흰 사람들 사이에서도 자라며, 누구에게든 나는 똑같이 주고 똑같이 받는다는 뜻이리라. 이제 내게 그것은 무덤들의 아름답게 깎이지 않은 머리카락으로 보인다. 부드럽게 너를 쓰다듬으리, 곱슬거리는 풀이여, 너는 어쩌면 젊은이들의 가슴에서 돋아났으리, 그들을 알았더라면 나는 그들을 사랑했으리, 어쩌면 너는 노인들에게서, 혹은 어머니 품에서 일찍 떠난 아이들에게서 왔으리, 그리고 여기 네가 바로 그 어머니의 품이구나. 아, 나는 마침내 그토록 많은 말하는 혀들을 알아본다, 그것들이 공연히 입천장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알아본다. 젊은이와 노인들은 어찌 되었다고 그대는 생각하는가. 여자들과 아이들은 어찌 되었다고 생각하는가. 그들은 어딘가에 살아 잘 있다. 가장 작은 새싹이 보여준다, 죽음이란 실은 없음을. 설령 있었다 해도 그것은 삶을 앞으로 이끌었을 뿐, 삶을 붙들려 끝에서 기다리지 않으며, 삶이 나타난 순간 사라졌다. 모든 것은 앞으로 밖으로 나아간다, 무너지는 것은 없다. 죽는다는 것은 누구나 짐작한 것과 다르다, 그리고 더 다행한 일이다.
월트 휘트먼 《나 자신의 노래》 6, 글뜸 번역
A child said What is the grass? fetching it to me with full hands; How could I answer the child? I do not know what it is any more than he. I guess it must be the flag of my disposition, out of hopeful green stuff woven. Or I guess it is the handkerchief of the Lord, A scented gift and remembrancer designedly dropt, Bearing the owner's name someway in the corners, that we may see and remark, and say Whose? Or I guess the grass is itself a child, the produced babe of the vegetation. And now it seems to me the beautiful uncut hair of graves. Tenderly will I use you curling grass, It may be you transpire from the breasts of young men, It may be if I had known them I would have loved them. They are alive and well somewhere, The smallest sprout shows there is really no death, And if ever there was it led forward life, and does not wait at the end to arrest it, And ceas'd the moment life appear'd. All goes onward and outward, nothing collapses, And to die is different from what any one supposed, and luckier.
▸배경 이야기
1855년 초판 이후 평생 고쳐 쓴 휘트먼의 《나 자신의 노래》 여섯째 마디. 풀이 무엇이냐는 아이의 물음에서 시작해, 가장 작은 새싹으로 죽음이 없음을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