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넉함을 모르는 것보다 큰 화가 없고, 가지려는 욕심보다 큰 허물이 없다.
노자 《도덕경》 46장, 글뜸 번역
禍莫大於不知足;咎莫大於欲得。
▸배경 이야기
《도덕경》 46장. 노자는 온갖 재앙의 뿌리를, 만족을 모르는 마음과 끝없이 가지려는 욕심에서 찾았다.
중국 춘추
약함이 강함보다 오래 가는 결을 처음 가리킨 사상가
글뜸의 결로 만나는 노자의 글귀 12편
넉넉함을 모르는 것보다 큰 화가 없고, 가지려는 욕심보다 큰 허물이 없다.
노자 《도덕경》 46장, 글뜸 번역
禍莫大於不知足;咎莫大於欲得。
《도덕경》 46장. 노자는 온갖 재앙의 뿌리를, 만족을 모르는 마음과 끝없이 가지려는 욕심에서 찾았다.
넉넉함을 아는 이가 부유하다.
노자 《도덕경》 33장, 글뜸 번역
知足者富。
《도덕경》 33장. 노자는 가진 것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넉넉함을 아는 마음에 부유함이 있다고 보았다.
아름드리 나무도 털끝 같은 싹에서 자라고, 구층 누대도 한 줌 흙에서 오른다.
노자 《도덕경》 64장, 글뜸 번역
合抱之木,生於毫末;九層之臺,起於累土。
《도덕경》 64장. 노자는 큰 것이 저절로 크지 않고, 미미한 것이 오래 쌓여 이루어짐을 나무와 누대에 빗대었다.
천 리 길도 발밑에서 시작된다.
노자 《도덕경》 64장, 글뜸 번역
千里之行,始於足下。
《도덕경》 64장. 노자는 아득한 일도 결국 지금 여기 내딛는 한 걸음에서 비롯된다며, 큰 것이 작고 가까운 데서 시작됨을 일렀다.
천하에 물보다 부드러운 것이 없지만, 굳고 강한 것을 치는 데는 물을 이길 것이 없다.
노자 《도덕경》 78장, 글뜸 번역
天下莫柔弱於水,而攻堅強者莫之能勝。
《도덕경》 78장. 노자는 가장 부드러운 물이 가장 단단한 것을 깎아 내는 역설로, 유약함이 곧 약함이 아님을 보였다.
약함이 강함을 이기고, 부드러움이 굳음을 이긴다.
노자 《도덕경》 78장, 글뜸 번역
弱之勝強,柔之勝剛。
《도덕경》 78장. 노자는 세상의 이치를 뒤집어, 오래 남는 것은 굳센 것이 아니라 휘고 받아들이는 부드러움이라 새겼다.
가장 높은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는다.
노자 《도덕경》 8장, 글뜸 번역
上善若水,水善利萬物而不爭。
《도덕경》 8장. 노자는 다투지 않고 낮은 곳으로 흘러 만물을 적시는 물을, 가장 높은 덕의 모습으로 두었다.
남을 아는 이는 지혜롭고, 자기를 아는 이는 밝다.
노자 《도덕경》 33장, 글뜸 번역
知人者智,自知者明。
《도덕경》 33장. 노자는 바깥을 향한 앎보다 자기를 들여다보는 밝음을 더 깊은 것으로 두었다.
남을 이기는 이는 힘이 있고, 자기를 이기는 이는 강하다.
노자 《도덕경》 33장, 글뜸 번역
勝人者有力,自勝者強。
《도덕경》 33장. 노자는 강함을 남을 누르는 힘이 아니라 자기를 다스리는 데서 찾았다.
넉넉함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으니, 그리하면 오래갈 수 있다.
노자 《도덕경》 44장, 글뜸 번역
知足不辱,知止不殆,可以長久。
《도덕경》 44장. 노자는 만족과 그침을 아는 것을, 부끄러움과 위태로움을 멀리하고 오래 견디는 삶의 길로 두었다.
단단한 것은 부러지기 쉽다. 나무는 죽으면 마르고, 살아 있는 동안에는 휜다. 바람을 받아주는 가지가 오래 남는다. 강함을 자랑하는 동안 우리는 이미 굳어 가고 있다.
노자 《도덕경》, 글뜸 풀이
人之生也柔弱,其死也堅強。萬物草木之生也柔脆,其死也枯槁。故堅強者死之徒,柔弱者生之徒。
노자 《도덕경》 76장의 결. 살아 있는 것은 부드럽고 죽은 것은 단단하다는 관찰에서 출발해, 부드러움이 단단함보다 오래 가는 생의 원리를 응시한 글. 약함이 곧 약함이 아니라는 자리다.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도는 참된 도가 아니다. 이름 붙일 수 있는 이름은 변하지 않는 이름이 아니다. 이름 없음은 천지의 시작이요, 이름 있음은 만물의 어머니이다. 그러므로 늘 비움 속에서 그 오묘함을 보고, 늘 채움 속에서 그 가장자리를 본다. 이 둘은 같은 곳에서 나왔으나 이름이 다를 뿐, 둘 다 신비롭다 일컫는다. 신비로움 중의 신비로움, 모든 오묘함의 문이다.
《도덕경》 1장
기원전 6세기 노자 《도덕경》 첫 장의 명제. 이름 붙일 수 있는 이름은 변하지 않는 이름이 아니라는 결로, 노자는 모든 사상의 시작이 이름의 한계를 인정하는 자리임을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