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기쁘게 하는 일은, 오래 생각해 보아도 좋은 일이다.
다자이 오사무 《여시아문》, 글뜸 번역
▸배경 이야기
1948년, 다자이가 자살하기 직전에 쓴 비평적 에세이 《여시아문》의 한 줄. 자기 안의 어둠을 평생 응시해 온 작가가 끝자락에서 남긴, 가만한 긍정이다.
1909–1948 · 일본 쇼와
부끄러움 많은 생애를 통해 인간의 약함을 정면으로 응시한 소설가
글뜸의 결로 만나는 다자이 오사무의 글귀 10편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일은, 오래 생각해 보아도 좋은 일이다.
다자이 오사무 《여시아문》, 글뜸 번역
1948년, 다자이가 자살하기 직전에 쓴 비평적 에세이 《여시아문》의 한 줄. 자기 안의 어둠을 평생 응시해 온 작가가 끝자락에서 남긴, 가만한 긍정이다.
사람의 마음을 의심하는 건 가장 부끄러운 악덕이다.
다자이 오사무 《달려라 메로스》
1940년 작 《달려라 메로스》의 한 자리. 친구의 신의를 의심하지 않고 끝까지 달려간 메로스를 통해, 다자이는 의심이야말로 가장 큰 부끄러움임을 새겼다.
지금 저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갈 뿐입니다.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화자가 아비규환의 인간 세계를 살아오며 가까스로 짚어낸 한 가지 진리.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자리에서 《인간실격》은 마지막 발을 내딛는다.
인간은 사랑과 혁명을 위해 태어난 것이다.
다자이 오사무 《사양》
1947년 작 《사양》에서 가즈코가 동생에게 보낸 편지의 한 줄. 패전 후 몰락하는 귀족 가문 한가운데서, 다자이는 인간이 결국 사랑과 혁명 두 자리를 위해 태어났다고 적었다.
행복감이라는 것은, 슬픔의 강바닥에 가라앉아 희미하게 빛나는 사금의 알갱이 같은 것이 아닐까.
다자이 오사무 《사양》
1947년 작 《사양》에서 다자이가 짚은 행복의 자리. 환한 곳이 아니라 슬픔의 강바닥에 가라앉아야만 보이는 작은 사금처럼, 행복은 깊은 바닥에서 가만히 빛난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인간실격》 첫 수기의 첫 문장. 다자이는 부끄러움 많은 생애라는 자기 정의로 작품 전체를 열었다.
나는 그 남자의 사진 석 장을 본 적이 있다.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1948년 작 《인간실격》 서장의 첫 문장. 다자이는 한 인간의 일생을 그의 사진 석 장으로 짚는 자리에서 소설을 시작한다.
싫은 것을 싫다고 하지도 못하고, 또 좋아하는 것도 쭈뼛쭈뼛 숨기며 전혀 즐기지 못하고, 그러고는 표현할 길 없는 두려움에 몸부림쳤습니다. 즉 저에게는 양자택일하는 능력조차도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뒷날 저의 소위 '부끄럼 많은 생애'의 큰 원인이 되기도 한 성격의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인간실격》 곳곳에 흩어진 부끄러움의 자리 가운데 한 대목. 인간 세계의 평범한 결정 하나가 자기에게는 늘 한 발만큼 모자랐다는, 다자이의 가만한 응시다.
그 아이는 제가 담배를 사러 갈 때마다 웃으면서 어서 술을 끊으라고 충고를 하곤 했습니다. "왜 안돼지? 뭐가 나빠? '사람의 아들이여, 술을 실컷 마시고 증오를 없애라, 없애라, 없애. 라는 페르시아의 옛 격언도 있는데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다자이는 《인간실격》 화자의 입을 빌려 자기를 짚었다. 다른 사람이 당연히 선택하는 자리에서 자기는 선택할 능력조차 없었다는, 가만한 고백이다.
훌륭해질 수 있을까? 그 무렵부터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모든 것에 만족할 수 없었기에, 늘 공허하게 발버둥 쳤다. 내겐 열 겹 스무 겹의 가면이 착 달라붙어 있어서, 어느 것이 얼마나 슬픈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어떤 쓸쓸한 배출구를 발견했다. 창작이었다. 여기엔 수많은 동류가 있어, 다들 나와 마찬가지로 영문을 알 수 없는 이 떨림을 응시하고 있는 듯 여겨졌다. 작가가 되자, 작가가 되자. 나는 남몰래 소망했다.
다자이 오사무 《만년》
다자이의 첫 단편집 《만년》(1936)에 실린 한 대목. 일평생 자기 안의 결핍을 응시한 작가가 그 결핍에서 가까스로 찾은 출구가 글쓰기였다는, 가만한 고백이다.